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르디난트 1세(불가리아) (문단 편집) == 생애 == [[오스트리아 제국]] [[빈(오스트리아)|빈]]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오스트리아군]] 장교로 있다가 불가리아 공이던 알렉산더르 1세의 퇴위로 불가리아 국회에서 후임 공으로 선출되었다. 1908년부터 [[차르]] 칭호를 사용하였다. [[파일:에드워드 7세 장례식 참석 군주들 사진.jpg]] [[에드워드 7세]]의 장례식에서. [[노르웨이 국왕]] [[호콘 7세]], '''페르디난트 1세 본인''', [[포르투갈 왕국|포르투갈]] 국왕 [[마누엘 2세]], [[독일 제국]] [[카이저|황제]] [[빌헬름 2세]],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 [[벨기에인의 왕]] [[알베르 1세]]다. 앞줄은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 사촌인 [[영국 국왕]] [[조지 5세]],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8세]]. 1차 [[발칸 전쟁]]에 참전해 마케도니아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불가리아 대제국을 꿈꾸며 계속 땅 욕심을 부리다가 오히려 1차 전쟁의 동맹국들과 적국인 [[오스만 제국]]이 힘을 합친 2차 [[발칸 전쟁]]에서 참패해 막대한 피해와 함께 1차 전쟁에서 얻은 땅 대부분을 잃어 여론이 악화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발칸 전쟁에서의 패전을 곱씹고 재기를 위해 [[동맹국]]으로 참전, [[세르비아 침공]]을 승전으로 이끌며 [[세르비아 왕국(1882년~1918년)|세르비아 왕국]]의 남부를 합병하는 데 성공한다. 페르디난트는 참전 직전에 '내 인생의 목적은 세르비아의 파괴에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세르비아를 증오했으며, 이를 실행하려한 강경하고 잔혹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사상을 증명하듯 불가리아의 압제를 받게 된 수많은 세르비아인들이 박해받았으며, 불가리아군에 의한 슈팁 대학살, 수르둘리카 대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왕의 뜻에 따라 세르비아 문화와 이를 이끌 중산층 지식인의 교육이 철저히 탄압되었고, 많은 세르비아의 유구한 수도원들이 약탈되었다. 또 그는 세르비아인과 불가리아인의 혼혈을 장려했으며, 그렇게 태어난 자녀들이 철저하게 불가리아인이 되도록 키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색이 짙어져 세르비아를 상실하자 책임을 지고 그해 10월 3일 퇴위, 왕위는 장남 보리스 3세에게 넘겼다. 이후 그는 고향인 독일의 코부르크로 돌아와 은거했는데, 상당히 장수해서 1948년까지 살았다. 하지만 퇴위한 이후의 삶은 비참했는데, 왕이었던 만큼 본인의 삶에 문제가 있던 건 아니었지만 주변에서 자꾸만 불행이 일어났다. 장남 [[보리스 3세]]는 1943년 히틀러의 불가리아 방문 이후 독살로 의심되는 죽음을 맞이했고, 그 뒤를 이은 어린 손자 [[시메온 2세]]가 1946년에 공산화로 인해 퇴위하면서, 자신이 세운 왕국이 후대에 멸망하는 걸 자신의 눈으로 본 인물이 되었다. 차남인 키릴 왕자는 형인 보리스 3세의 급사 이후 조카인 시메온 2세의 섭정을 맡았다가 공산당에게 체포되어 추축국에 부역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당했다.[* 이 소식을 들은 페르디난트 1세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구나.'라고 말하며 탄식했다.][* 장녀 에브도키야는 이때 망명이 허락되어 독일로 망명하였고(독신으로 사망), 차녀 나데지다는 왕정 폐지 이전인 1924년에 뷔르템베르크의 공작 알브레히트 오이겐([[뷔르템베르크 공작 알브레히트]]의 차남)과 결혼하여(슬하 2남 3녀) 독일에 정착했기에 크게 화를 입지는 않았다.] 1948년 페르디난트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발상지였던 코부르크의 뷔르글라스-슐뢰셴 저택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불가리아에 묻히고 싶다는 것이었으나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당국은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가문이 대대로 안장되었던 코부르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교회[* 부친 아우구스트 공자가 세운 교회로, 아우구스트 공자 부부를 시작으로 그 후손들이 안장되었다.]의 지하실에 매장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